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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내 오랜 그녀와 장군의 동상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패밀리(요즘 말로는 홰밀리)라는 단어를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임에도
예를 들어 "우리 패밀리는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이라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패밀리라는 단어는
“마피아는 루치아노 패밀리가 말이지 어쩌구…”
이런 말투에 오히려 더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거리거리에는 테이프 판매 리어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당시에도 영어 공부의 필요성은 지금에 못지 않아서 요즘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듯이 쏘니 워크맨이나 아이와, 파나소닉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히 오성식 생활영어 7200과 같은 영어회화 최신 인기가요⑧과 같은 제목이 붙은 테이프를 듣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무렵에는 일제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금성의 아하나 삼성의 마이마이, 대우의 요요같은 제품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시대인지는 가물가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테이프들에서 수익이 얼마나 나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 마다,
이쪽 길은 대가(大家), 저쪽 길은 왕가(王家)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 보면 꽤나 짭짤했던 장사였던 것 같다.


리어카의 판매고는 온전히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신문·언론에서 문화평론가들이 아무리 노이즈가 한 물 갔다고 떠들어도,
리어카에서 노이즈상상 속의 너가 나올 때 “이게 누구 노래에요?”라고 물어보면서
테이프를 사 가는 사람이 가장 많으면 당연히 길거리에서는 노이즈의 노래만 깔리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길보드 차트라는 말도 나왔다.

물론 나중에는 기획사에서 길거리 테이프 판매상을 홍보 매체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90년대 초중반
어떤 노점상 아저씨가 아무리 그래도 최고 많이 팔린 테이프는 예전에 팔던 이문세 4집이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 리어카에서만 이문세 테이프를 하루에 스무 박스도 팔고 사십 박스도 팔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 판매량은 200만장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인기다.

(물론 그 시절이니 비공식 집계다.
 비공식적으로 80년대 가장 많이 팔린 테이프는 주현미의 쌍쌍파티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 당시 이문세는 김희애의 인기가요가 청취율 1위를 하던 얼마 동안을 제외하고는 몇 년간 그 시간대를 평정한 부동의 인기 라디오 디제이있고, 또 음반 발매 전에 어떤 여자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후 4집 음반이 온통 이별이야기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끌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문세 4집의 힘은 이영훈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음반에도 작가주의를 찾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이문세 앨범들의 이영훈모래시계 OST의 최경식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4집에 실린 곡들이 가요 순위의 상위에 오르지는 못했었다.
체계적인 관리의 개념이 없었던 시기였기때문에 한 음반에서 나온 곡 너댓 개가 팬들의 취향에 따라 동시에 10위권에 진입했다가 고만고만하게 인기를 나눠 받고 동시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가수가 음반 하나에서 인기곡 하나 만드는 것도 허덕허덕하는데 이문세 4집, 5집은 나오자마자 노래들이 가요톱10 순위에 우후죽순격으로 동시에 순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이문세 아니 이영훈의 저력을 새삼 느꼈었다.

이문세는 4집 인기의 여세를 몰아 5집은 우리나라 가요사상 최초로 마삼 트리오의 일원인 이수만이 직접 녹음해서 라디오 광고까지 하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문세의 노래 중 5집의 내 오랜 그녀와 6집의 장군의 동상이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전 작곡가 이영훈이 사망했다고 한다. 만약 그 당시 리어카 테이프를 안 사고 정품 테이프를 샀으면 병치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