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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흔적 (花のあと, hana no ato, 2010)

태영^감각천재 2012. 2. 7. 10:33
어릴 때 보았던 영화, 나이스 쥴리 (Joyeuses Pâques). 즐거운 부활절이라는 의미인데, 미국에서는 영화의 배경인 프랑스 니스와 여자 주인공 이름인 줄리를 합쳐서 “Nice Julie”로 개봉. 이게 한국에 들어오면서 나이스 줄리가 됨. 전형적인 바람둥이 남자와 젊은 여자가 나오는 프랑스식 코미디 영화인데, 반전이 있다.

줄리가 사실은 매우 큰 그릇이었다는 것.


얼마전까지 일본 젊은 여자들의 우상, 기타가와 게이코(北川景子) 주연의 일본 사극. “나이스 쥴리”의 반전을 연상 시키는 영화다.

< 청춘은 꽃 같이 아름답지만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만 간다 >

일본 에도 시대, “후까시”와 “가오”로 가득 찬 시대였다.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가문이 모시는 가문, 에도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중앙의 유력 가문까지 깍듯이 모셔야하고, 예법에 어긋나서 가문이나 지역에 먹칠을 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던 시대.

<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해 주는 인사말은 “정진하시게…….” >

전쟁에서 돌아온 무사를 성주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압권이다. 이름 한 글자만 못외워도 큰 실례다. 한번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사회 구조.

< “가오”의 결정판 > 

에도 인근 번(藩)에 명문 사무라이 집안의 외동딸 이토는 검술 실력으로 번 내에서 최고를 다투지만, 벛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어느 봄 날 번 내에서 실력이 가장 출중하다는 하급 무사 마고시로에게 검도 시합을 신청해서 지고 만다.

< 마고시로와 겨루는 이토 > 

마고시로는 하급 사무라이지만, 허우대가 멀쩡하고 예의 바르고 명문가에 아첨하지 않고 여자라고 깔보지도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승승장구하던 이토는 마고시로와의 승부에서 패한 이후 칼을 내리고 에도에 간 정혼자 사이스케를 기다리며 꽃같은 인생의 봄을 흘려 보낸다.

< 화양연화 : 꽃 같은 시절을 기다림 속에 흘려 보낸다 >

그러나 정작 에도에서 돌아온 정혼자는 변변치 못한 푼수처럼 보일일 뿐. 하지만 정혼자는 정혼자.자기의 길을 가는 이토.

< 정혼자. 장점이라면 밥은 가리지 않고 많이 먹는다는 것 >

마고시로가 모함에 빠진 이후 부터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범인은 근접조차 할 수 없는 큰 그릇들은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이토는 이토대로, 사이스케는 사이스케대로.

< 에도시대, 남자와 여자의 자세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법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에도 시대의 분위기다. “가오” 속에 살아가는 인생, 여자들이 집안에서 방문을 열고 닫는 법, 하는 일, 밥을 먹는 법, 허용되는 것과 허용 안 되는 것들이 숨 막힐 듯이 답답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면서 세상은 돌아갔다는 것. 답답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주는 영화다.

앞으로 지향해야할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어, 길게 되새기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