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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beautiful)

태영^감각천재 2008. 10. 19. 10:29
王侯將相寧有種乎 (왕후장상 영유종호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 사기, 진섭세가)

왕후장상은 누구나 될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왕후장상이 실제로 되고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제작사 김기덕필름이라고 써있는 화면이 나타난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첫 화면에서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김기덕이 직접 감독한 영화와 구분될 수 있을까.

은영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여자다.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가던 여고생도 다시 쳐다보고 싸인 받으러 오고, 거리에 앉아 있으면 별 희안한 놈들이“우리 어디서 본적 있죠?”하면서 말을 건다.

< 지나가던 여고생도 돌아보는 은영 >

미용실에 가면 배우하고 싶으면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더구나 같이 간 친구는 수 십 만원 들여 머리하는데, 정작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돈들여 머리하러 온 친구에게는 관심없고, 은영에게만 관심을 보이면서 무료로 스타일을 잡아주고 싶다고 할 정도다.

<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반듯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은영 >

그런데 은영은 성형도 안하고, 연예인이 될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도 않으며, 항상 친절하고, 이쁜척·잘난척 자랑하거나 나서지도 않고, 아무 남자나 함부로 만나지도 않는 모범적으로 보이는 삶을 산다. 조급해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평민”들과는 다른 왕후장상의 씨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너랑 나랑은 급이 달라. 너같은 애들은 나한테 넘쳐. 그러니까 니 주제 알고 미연이한테나 잘해.” >

그렇지만 은영은 예상과 다른 일을 겪게 된다.

여기서 이 영화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외모지상주의에 탐닉하는 사회에서 치명적 아름다움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거나, 여자 주인공은 보여지거나 소요하고 싶은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으로 표피적 현상에 집중할 경우, 뭔가 든것이 있어보이려고 일부러 답이 없는 부조리한 현실이나 인간의 밑바닥으로 유도하는 전재홍김기덕 감독 특유의 전형적인 이야기 방식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물론 김기덕 감독이 이 영화의 감독을 맡지는 않았지만, 또 한번 헷갈리기 좋게 영화를 만들었다. 김기덕 스타일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부조리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에서 은영이 예기치못한 일을 겪는 것은 순진한 여주인공이 왕후장상의 씨를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지키는지 예측하거나 그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지는 않는 그것의 부족.


영화를 보고 나서 홀연히 조 플러머 생각이 났다.

2009년 미국 대선 마지막 토론회 직전 일요일
아들과 함께 야구 놀이를 하던 한 배관공(Samuel Joseph Wurzelbacher)은 오바마가 자기 집 주변에서 유세를 하면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오바마의 유세장에 달려가 길거리 토론을 했다.

< 배관공 >
내가 15년간 배관공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조만간 가게를 하나 인수해서 년25만달러 이상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세금을 더 내야될 것 같아서 성공을 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 오바마 >
내가 대통령이 되면 15년간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소득이 25만달러에 도달하지 못한 당신은 앞으로 감세혜택을 받게 된다. 가게를 하더라도 25만달러에 못미치면 혜택을 보게 되는거다. 만약 가게가 잘 되서 25만달러를 넘는다해도 25만달러까지는 혜택을 보고 그 이상 부분에 대해서만 추가로 세금을 내는거다. 이게 부당하냐?

< 미국 대선 오바마 후보와 오하이오 배관공(일명 조 플러머) >


이런 전차로 지난 마지막 미국 대선 토론회에서 오하이오의 배관공 아저씨는 페일린이 말한 조 식스팩(joe six-pack)의 대명사가 되면서, 조 플러머(joe plumber)로 불리게 되었다.

조 식스팩은 퇴근할 때 맥주 팩(보통 6개 들이)을 사들고 들어와서 자기 전까지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잠드는 전형적인 미국인들을 말한다. 물론 연간 소득이 25만 달러 쯤 되는 사람들은 조 식스팩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저녁시간을 향유할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배관공 아저씨는 배관공 자격도 없는 배관공 보조에 불과했고, 연봉도 25만달러에 훨씬 못 미쳐서 오마바의 조세정책에 따르면 오히려 혜택을 받는 대상이었으며, 게다가 현재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이 버거운지 체납까지 한 상황이었다.

의분강개를 참지 못하고 대선후보와 길에서 붙어 맞짱 토론을 할만한 기개는 가졌으되, 남이 만들어준 논리와 문장(추측컨데 연 소득 25만 달러 이상 버는 그룹에서 만든)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 배관공 아저씨는 앞으로 과연 연 소득 25만 달러를 벌어 오바마 정책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

연 소득 25만 달러를 버는 배관공의 씨도 따로 없는 걸로 아는데…….